<포토플러스 2010년 7월호>
근대건축, 소멸되는 아름다움
이주한 | 순천대 교수
오랜 인연은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기 마련이고 처음 만남이 언제였는지 대개 기억 못하기가 일수이다. 내가 사진가 이주형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즈음 뉴욕대 동문회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대동산수’ 전시의 같은 멤버로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부터 그와 깊게 교류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름이 항상 화제가 되곤 했다. 이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촌 아닌가 하는 농담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어 확인하는 바이지만 그와 나는 인척으로서 아무 관계도 아니다. 하지만 같은 사진가로서 교수로서 그 누구보다도 각별한 유대감을 갖는 동료인 것만은 분병하다. 그를 떠올리면 온화한 성품과 지적인 면모가 가장 먼저 다가온다. 이 같은 침착하고 온화한 성격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남 이전의 작업들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유학 생활 동안 토이 카메라나 핀홀 카메라를 사용해서 작업한 ‘기억의 풍경’의 여러 시리즈들이다. 주로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브룩클린 끝자락의 코니 아일랜드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마치 사라진 기억을 다시 불러와 모호하게 뒤엉킨 듯 시간의 아우라를 드러낸다.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나 역시 뉴욕에서 한동안 유학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기억의 풍경’ 작업이 갖는 대외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그의 작업은 내게 있어서 외롭고 가난한 유학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적이 없는 도심 안의 공원이나 일광욕을 위해 드문드문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카메라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주형과 서로 깊은 공감대를 갖게 된 계기는 2000년 비슷한 시기에 각각 경주와 마산에서 대학의 교수생활을 시작하면서이다. 이후 같이 활동하던 ‘대동산수’전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업을 보기가 어려웠다. 한 동안 침묵하던 그는 2003년 대구로 학교를 옮기면서 뉴욕에서 작업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간의 끝’, ‘원더랜드’와 같은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55나 665타입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현상과정에서 약품이 흘러내린 자국이나 먼지, 스크래치 같은 것들이 사진에 독특한 시각 효과를 더해주었다. 이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우연히 발견한 대구의 달성이라는 장소가 갖는 여러 시간의 층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하는 가운데 얻어낸 효과라고 한다. 특정한 장소는 지금 이곳의 현실에 더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흔적과 체취를 내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달성공원을 담아낸 ‘시간의 끝’ 시리즈 이후 드라마 ‘야인시대’로 유명한 부천의 영화 세트장을 사진에 담아낸 ‘보이지 않는 기억’ 시리즈를 발표했다. 근대의 장면을 재현한 세트장은 대상으로서는 실재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부재하는 허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인지 그는 이후 아예 근대건축 자체를 대상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대상으로서 근대건축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05년부터 3년 가까이 공간이라는 건축전문지에 연재된 모던스케이프라는 포토에세이를 통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진 분야보다는 오히려 여러 건축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아냈다. 이러한 일관된 관심이 이어져 2006년 강원다큐멘터리 지원작가로 선정되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발표가 난 후 같이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MS 시리즈라고 종종 표기하는 ‘자취 vestige’ 시리즈가 그것인데 나는 과거의 대상에 대한 관심이 보다 직접적인 표현으로 변모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모노톤에서 컬러사진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나 역시 컬러작업에 천착해온지라 그의 이런 변화가 못내 궁금해서 사석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침착하고도 논리적으로 사적이며 모호한 기억의 경험된 풍경에서 사회적 풍경으로의 변화라고 설명해 주었다. 특히 역사적 기억의 환기를 강조하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의 MS 시리즈는 근대건축이라는 대상을 익숙함의 미적 체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의 내밀한 일상의 기억을 자극하는 보편적인 감성이 사진에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라는 거대 사실을 내포하는 근대건축은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일상적 심리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에서 근대건축은 단순히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일상적 시간과 의식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2008년 ‘자취’라는 사진집으로 정리해낸 그의 근대건축 작업은 지역에서 개최된 전시 때문인지 작품이 갖는 성취에 비해 반향이 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동시대 쟁점에 대한 지나친 의식이 그가 갖고 있는 감성을 다소 지워내고 있는 듯해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사석에서 오랫동안 그가 강조해 왔던 소멸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근대건축을 대상으로 한 ‘자취’ 시리즈 이후 그의 작업을 몇몇 기획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근대건축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다큐멘트가 갖는 시각적 설명이기 보다는 간결한 그림으로 대상의 본질에 다가선 느낌이었다. 최근 그는 지난 사진작업의 여정을 깊게 반성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몇 년간 드러나는 활동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대화를 통해서 나는 그가 얼마나 새로운 작업을 열망하는지 또한 그 방향에 대해 숙고하는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역할과 작가로서 진지한 작업이 병행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그에게 애정이 담긴 지지를 보낸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대학의 과도한 실적경쟁이 작가의 창조력을 급속히 고갈시키는 현실을 잘 알지만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머지않아 그가 새로운 작업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깊게 다가올 것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