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 빛의 흔적과 중립적 시선
김석원 | 시각예술비평
‘격자 풍경’에 나타나는 빛은 영원성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다. 빛의 영원성은 신체에 갇힌 인간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연결된다. 작품에 드러나는 빛의 성질을 살펴보면, 창문을 통과해서 건물 내부로 스며든 빛 자체는 앞, 뒤, 상, 하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의도는 빛을 통한 자아와 관객과의 공명이기에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보이는 빛의 묘사는 디지털 작업의 극한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확인이 가능 한 지점이다. ‘격자 풍경’에서 의도하는 빛은 천천히 관객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 빛 은 어떤 메시지를 강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온화한 상태를 유지한다.
‘격자 풍경’의 그리드는 형상을 정확하게 표현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건축적인 실내 구조가 포함되어 형상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고 의도적으로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외부의 풍경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드의 공간을 군데군데 비워둔 상태로 표현하며 블라인드, 커튼 등의 가림막을 사용해서 창 밖의 풍경을 투영된 이미지로서 바라보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빛의 흔 적’을 통해 외부 풍경의 가시성을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빛의 흔적’이 공간에 침투하면서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풍경의 실재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암시성은 비가시적 공간을 유보해서 실재의 풍경을 신비로운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이로서 관객들은 ‘빛의 흔적’이 남긴 이미지를 통해 물질적인 인식을 부여 받고 공간과의 조용한 교류로 암시성을 체험한다.
그리드 - 심미화와 추상표현주의 사진
‘격자 풍경’은 추상표현주의의 개념과도 유사한 지점을 지향하는데,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화면을 가득 메운 그리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역으로 개방된 이미지로 다가 올 수도 있다. 그리드 밖의 자연풍경은 공중에 부유하는 듯 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풍경은 관객의 시선을 벗어나 미끄러지듯이 밀려나기도 한다. 이처럼 ‘격자 풍경’의 추상적 특징은 ‘거울 효과’를 드러내기에 매력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추상화된 ‘격자 풍경’은 무엇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부재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공간으로서, 그곳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화면 속 공간은 마치 진공상태 속에서 부유하는 중 성적 공간으로 남게 되는데, 이 공간은 인간의 사적인 기억이나 체험이 남아 있는 장소가 아니라 상실된 장 소로 각인된다. 관객은 간결한 이미지에 익숙하게 다가가지만, 한편으로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 이다. 공간의 의미는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격자 풍경’의 공간은 인간의 개 인적인 삶과 흔적을 찾기 어려우며 따라서 이곳에서 공간이 장소화 되는 주체를 찾을 수 없다.
‘격자 풍경’을 되새겨보자. 빛의 영원성을 전제로 빛의 효과적 측면에서 자아와 관객과의 공명을 시도하고 그리드를 통해서 가시화하는데, 이때 그리드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모더니즘적 질서 를 벗어나서 관객이 각자 체험한 이미지를 상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진 이미지를 경계 없는 지점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격자 풍경’의 새로운 시도는 구상과 추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대중성과 예술성, 관객과 작가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면서 현대사회에서 사진의 맥락을 재탐색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