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16년 10월호>
Crtic, 전시리뷰: 이주형 Light Flow
9.5~10.1 갤러리 분도
손영실 / 경일대 교수
이주형의 사진에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블라인드이며 그것은 형태와 색상에 의해 서로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블라인드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형상들은 그의 사진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그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관해 관람자에게 선택의 관문을 열어둔다.
블라인드의 표면에 머물러야 할지 좀 더 세심하게 블라인드 사이에 머물러 있는 빛에 집중할지 혹은 흐릿하게 형상으로만 드러나는 블라인드 너머의 풍경에 시선을 둘지 말이다. 관람자에게 부여된 자유로움에 관한 용인은 어쩌면 처음부터 그가 바라봄의 대상을 명료히 상정해 두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일종의 거리두기 전략일 것이다.
시간대를 달리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촬영한 블라인드를 나란히 배치하거나 널찍한 면의 분할을 색면으로 채우는 그리드로 가득한 그의 사진은 마치 슬로 비디오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작품 감상 태도를 요구한다. 언뜻 표면을 스쳐가듯 본다면 그의 사진에 침잠해있는 이미지를 볼 수 없고 시간의 지속 속에서 가만히 표면을 응시하고 있어야만 가려진 이미지들이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그가 긴 노출을 준 시간만큼 축적되어 있던 빛이 형상을 점차 드러나게 하는 원리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특정한 시공간으로 이뤄진 물리적 현실을 망각하고 늦춰지거나 빨라지는 시간의 변이 속에서 공간적-시간적 사건에 관여한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회화에서 색면이 서로 다른 색의 중첩을 통해 간섭작용을 일으킨다면 이주형의 사진은 같은 색면을 가진 블라인드의 잘린 면들 사이로 빛이 침투하여 특정한 시공간을 지워내고 시간과 공간의 유동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의 사진에 나타난 거친 색 입자들은 이 사진이 현실의 산물임을 확인시키며 빛과 색의 대상을 떠나서 감각을 느끼는 자로서 체험되는 신체에서 발견되는 객체(objet trouvé)를 인지하게 한다.
블라인드는 재현적 특성과 비재현적 특성을 매개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의 재현이 아닌 시각적 경험을 화면에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가운데 회화가 평면 위에 그려진 그림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사각형의 블라인드가 카메라의 사각형 프레임의 메타포 기능을 함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사진에 보이는 시각적 대상은 사진가의 프레이밍 행위에 의해 선택된 단편이며 외부의 현실은 사진적 무의식에 관여되며 사진에 영향을 끼친다.
디지털 사진의 등장 이후 더욱 첨예화된 포스트 포토그래피 논쟁은 전통적 사진을 견고히 지탱해 온 사실적 재현의 패러다임 붕괴로부터 기원한다. 이것은 사진에서 리얼리티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사진으로 작업하는 현대 작가들은 카메라를 재현의 도구만이 아니라 개념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적극 사용하며 새로운 감각의 흐름, 방법론적 실천을 보여준다. 제프 월(Jeff Wall)이 자신을 사진가(photographer)가 아닌 인포그래퍼(infographer)로 불러줄 것을 요구한 것처럼 말이다. 시각 중심주의의 부정에 기반을 둔 비재현 회화의 등장이 재현을 넘어서는 현대의 사유를 확인시켜주듯 사진이 재현의 논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사유에 나타나는 방식, 즉 이성논리에 의한 인식론적 접근이 아닌 감각에 기대어야 한다.
이주형은 사진이 적어도 현실의 흔적임을 확인시켜주지만 비개성적 방식과 불확실한 흐름 속에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자각을 고양시키도록 독려하는 방식을 통해 사진의 이형(variant)을 개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