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태 <이주형 사진전 '침묵의 여행'> 사진예술 1994년 12월호

<사진예술 1994년 12월호>

이주형 사진전 '침묵의 여행'

서남미술전시관 1994년 10월 17일 ~ 29일


홍순태 | 신구대 교수 

이주형은 연극영화를 공부했으나 후에 스틸사진에 관심을 두어 홍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전문 사진인이다. 이미 그는 3회에 걸친 그룹전을 통해서 그의 사진의 방향과 추구하고자 하는 시각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오늘의 풍경사진은 진경산수의 서정적 풍경에 국한되지 않고 실로 다양하게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제 웨스톤이나 앤셀 아담스의 사진은 먼 옛날의 고전이 되고만 시대이고 존 섹스톤과 같은 부류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New Topographics'의 전시 이후 사진은 급변하여 서정적인 아름다운 정경에 접근하는 것에서 점차 멀어져 문명비평적 시각으로 많이 변했고, 그것도 직설적이 아닌 은유적인 시각으로 변모했다. 이제는 사진가 자신이 자연을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주형의 '침묵의 여행'은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할 때 현대풍경사진의 주조류 쪽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 사진이다. 처음 사진의 도입 부분은 전혀 인간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 때문에 자유분방하게 마구 자란 나무와 풀들이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것은 엄연한 자연의 질서가 존재하는 풍경이다. 이러한 자연스럽고 순수한 풍경이 점차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 할퀴고 상처가 나기 시작하고 인간의 편의대도 변형하여 자연적 공간은 사라져가는 아쉬움에서 그의 사진은 막을 내린다. 이러한 사진의 순서적 배열로 인해 스틸사진이면서도 그의 전시작품을 순서대로 둘러보고 난 후에는 마치 한편의 명화를 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영상적 매력이 있다.

    이러한 센스는 역시 대학시절에 연극영화를 전공한 밑거름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흑백의 작화처리도 연조에 의해 어떠한 것은 깊은 섀도우에서도 명쾌하게 디테일을 부각시켜 풍경의 리얼리티의 재현에 손색이 없도록 했고 발색에 있어서도 차디찬 냉조보다는 온조의 색조를 재현하여 부드럽고 따듯함을 준다. 그의 사진에는 과장하거나 강하게 드러내는 외형의 부르짖음은 없으나 침묵 속에 서려있는 현실비판의 부르짖음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