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경계선 상에 존재하는 이미지> 사진예술 2014년 11월호

<사진예술 2014년 11월호>

경계선 상에 존재하는 이미지 

김영태 | 사진비평

우리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사진이미지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그림 같다는 말을 한다. 평면이미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여전히 고전적인 시각매체라고 말할 수 있는 회화라는 것을 내포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리얼리티가 제거된 사진이미지일지라도 컬러, 톤, 디테일 등 작품의 표면을 이루는 시각적인 요소가 회화의 그것과는 많이 차이점이 있다. 시각적으로는 유사하게 느껴지더라도 회화가 재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세부가 있다. 다만 사실적인 요소가 극도로 배제된 사진을 관습적으로 그림 같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특히 디지털사진이미지는 회화와도 내부 및 외부가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아날로그사진과도 다른 층위에서 존재한다. 

    이주형은 그동안 표현대상과 관계없이 시간, 기억, 감수성, 예민함, 서정성 등과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사진작업을 보여주었다. 노스텔지어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원, 근대건축물, 드라마세트장, 자연풍경 등 다양한 대상을 다루었지만, 그것들의 고유한 시각적 특성 및 문화적인 의미와 관계없이 작가 특유의 예민함과 정서가 느껴지는 결과물을 생산했다는 의미이다. 사진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로세스process에 작가가 전통적인 시각예술처럼 수공예적으로 개입한 결과물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내면적인 영역이 명료하게 투사된다. 

    그래서 사진을 통하여 찍은 이의 내면적인 영역을 일정부분 파악할 수 있다. 대상의 선택, 표현방식의 선택등과 같은 이미지 제작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생산한 이미지는 감성적인 요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시대성 등과 같이 보는 이의 이성을 일깨워주는 내러티브도 드러난다. 작품의 표면과 그 이면이 감성적인 요소만 채워져서 보는 이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에선 디자인적인 특정한 공간에서 만난 창窓과 그것을 통하여 바라본 풍경을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전시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의 질감을 감각적인 색채로 묘사한 결과물도 있고,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바깥풍경을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게 재현한 이미지도 있다. 또한 창을 통하여 드러나는 인공구조물이 디테일의 상실로 인하여 자연풍경의 일부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가 하면, 실내 공간을 극단적인 화이트 톤으로 변주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가장 사진적인 재현방법을 선택하여 대상을 다루었다. 하지만 작가의 정서, 조형감각, 매체의 특성 등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낯설게 다가오는 특별한 결과물이 생성됐다. 디지털테크놀로지가 작용하여 만들어낸 또 다른 변주물이다. 전시작품 한 장 한 장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인화물의 표면이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매체의 특성을 수용했기 때문에 성취한 결과이다. 작가의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주형이 이번에 발표한 ‘Grid Landscape’시리즈는 단순하게 분석하면 시각적으로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색면 추상화나 한국회화의 특정 경향인 단색화와 유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접근하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지의 작동원리도 많은 간극間隙이 존재한다. 

    우선 이주형이 생산한 이미지는 디지털테크놀로지가 작품의 원초적인 뿌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디지털사진 고유의 특성이 일궈낸 성과물이라는 얘기다 아크릴이나 유화물감으로는 생산할 수 없는 독특한 컬러가 작품의 표면을 채색한 것이다. 작가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예술가이지만 학문적인 태도로 작품을 분석하고 스스로 선택한 도구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이론가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매체를 예리하고 엄정하게 분석한 결과를 자신의 작업프로세스에 적용해서 최종적인 결과물을 생산한다. 작가의 작품은 이 지점에서 모더니즘 회화와 분명한 차별점이 발생한다. 

   또한 사물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섬세한 정서와 시대성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라는 것에서도 분명한 변별요소가 존재한다. 동시대적인 첨단미디어를 이용하여 새로운 층위에서 작동하는 조형언어를 생산한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여러모로 경계지점을 넘나든다. 사진과 회화, 디지털이미지와 아날로그이미지, 공간의 내부와 외부, 인공물과 자연물 등 작품을 이루는 다양한 미학적 요소들이 무게의 중심을 유효 적절하게 견지堅持하여 작품의 내피內皮 및 외피外皮를 구성했다. 그 결과 보는 이들에게 감각적이면서도 당대當代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